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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 of pain

  • Chocolateking
  • 2016년 3월 12일
  • 2분 분량

이세돌이 알파고에 연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나타내는 반응들 중 흥미로웠던 것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의 적수로 부적합 하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이세돌이 최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누가 최강인가. 현 랭킹 1위가 최강인가, 아니면 1년 뒤에 랭킹 1위가 최강인가. 누가 되었든 알파고의 상대로는 다 적합한 선수들이었을 것이다.

또하나는 이 대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반응이다. 대국 전에 나온 이야기지만 새삼 지금 꺼내 뉴스화 된다는 것은 대결 후의 의견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의견이 나온 시점이 말해주듯 금번 대국은 그러한 조건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또한 현재 인공지능의 발전 수준과 그 방법이 그러하기에 불공정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애초부터 대국 당사자가 인지하고 있던 부분인데, 그걸 두고 사기니 뭐니 말할 이유가 없다.

내가 가장 주목했던 반응은 이세돌이 지고 난 후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의 반응이었다. 그 학생은 알파고는 바둑을 두는 재미를 알지 못하잖요라는 말을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같다는 의미에서 그래봐야 알파고는 전기세 나가니 평소에 꺼둘텐데 뭐~ 하는 반응도 있었다.

내가 세번째 반응에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그 반응을 듣고 무신론자였던 회심전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갖고 있던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왜 신은 인간에게 슬픔을 만들었는가. 그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기쁨만, 즐거운 일만 있게 하지 않고 왜 많은 불행과 사고를 인간사에 존재하게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은 다음 질문과 같다.

신은 왜 그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인간을 알파고처럼 만들지 않았는가.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슬픔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이 없다면 행복한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모든 시험에 응시하는 대로 다 합격을 하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즐거움도 슬픔도 느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기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은 무신론자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기도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생각과 목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딱 한 번 아이가 많이 아팠을 때 나의 바람에 관한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힘으로는 이 아이의 몸과 정신을 어찌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긴다는 굴복과 겸손의 의미이지 신에게 그 병을 낫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기도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과 고통중 행복만 택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며 맞닥들이는 수많은 행복과 불행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하는 겸손의 표현이다. 내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를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힘이드는 일인지 기도해보며면 알 수 있다.

사순절 다섯째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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